| 밑도드리 | ||
| 훌륭한 음악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서, 혹은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공자는 순 임금이 만들었다는 음악인 소(韶)를 듣고서 넋을 잃었다고 한다. 천하를 주유하다가 산동성의 제나라에 이르러 순 임금의 소음악을 듣고는 '도대체 음악이 이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인가'고 찬탄하며 이내 그 음악에 빠져들어 3개월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었다. 또한 공자는 '시경(詩經)'의 제일 첫머리의 노래인 관저장(關雎章), 즉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關關雎鳩 在河之洲 窈 淑女 君子好逑)'로 시작되는 가사의 음악을 듣고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 적이 있다. 공자가 이처럼 감복했던 음악은 대체 어떤 내용이었을까? 당장 우리 옆에 실제의 음악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자가 이들 음악을 듣고 표현한 짤막한 언급을 통해서 그 대체적인 분위기만은 연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공자는 순 임금의 음악을 듣고는 "아름다움을 다했고 착함을 다했다(盡美矣又盡善也)"고 예찬했으며, 시경의 첫 노래를 듣고는 "즐거우면서도 음탕한 기가 없고 슬프면서도 상심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라고 하며 그 중용적인 정조를 높이 샀다. 이렇듯 순 임금의 소 음악이나 시경의 관저장에 대한 공자의 술회 속에는 한마디로 균형이랄까 절제랄까,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용의 미덕을 중시하는 흔적이 깔려 있다. 유교 사상의 몇몇 특징을 곰곰 음미해 보면 곧 상통하는 귀착점을 발견할 수 있는 그 같은 예술관이요 음악관이다. 신라의 우륵(于勒)에 얽힌 일화 중에서도 당시 사람들은 어떠한 음악을 높이 평가했는가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가야에서 신라로 망명한 우륵은 국원성, 곧 지금의 충주에 정착하면서 제자를 키우고 작곡을 하는 등 음악 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상가라도, 하가라도, 달기, 거열 등 12곡의 가야고 곡을 지어 그의 제자인 법지와 계고, 만덕 등 세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스승의 작품 12곡을 들은 제자들은 그 음악이 "번거롭고도 음란(淫亂)하다(繁且淫)"고 평하며 다섯 곡으로 압축하여 뜯어 고쳤다. 이 같은 사실에 우륵은 대단히 진노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개작한 음악을 거듭해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청출어람이라고나 할까, 제자들이 고친 음악이 한결 좋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즐겁되 막되지 않고 슬프되 비탄스럽지 않다(樂而不流 哀而不悲)" 감탄하며 가히 바르고 훌륭한 '정악(正樂)'이라고 칭찬했다. 우륵이 이야기한 '낙이불류 애이불비'라는 말은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낙이불음 애이불상'에서 마지막 글자들만을 바꾸어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자를 수입해서 이두문자까지 만들어 썼던 신라이고 보면 우륵이 이처럼 논어의 용어를 빌어서 음악을 언급한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륵의 말이 아니라 제자들이 우륵의 12곡 음악을 처음 듣고 비평했던 말인 '번차음(繁且淫)'이란 용어이다. 번차음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번거롭기만 하고 아정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쓸데없는 가락을 많이 늘어놓았을 뿐, 알맹이는 빈약하다는 말일 것이다. 외화내빈의 요설을 떠올리면 족할 것이다. 우륵의 제자들이 얘기했던 '번차음'하다는 말은 우리네 음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매서운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가슴'이 아닌 '기교'로 작품을 써 가는 세상이 됐다 치더라도, 우리의 주변에는 내용 없이 허황된 음들의 수식만으로 홍수를 이루고 잇는 음악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도도한 음악의 범람 속에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정서적 아이러니를 모래알 씹듯 반추해야 할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일찍부터 우리에게는 모름지기 '훌륭한 음악이란 간단한 것이고 훌륭한 예절이란 간결한 것(大樂必易 大禮必簡)'이라는 선인들의 기막힌 명언이 있음에도 말이다. 굳이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경륜에서 우러난 말이라서가 아니라 실로 대악필이라는 말은 명언 중의 명언이요, 음악 예술의 요체를 한마디로 압축한 결론 중의 결론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훌륭한 음악의 대명사라고 할 대악필이의 정신에 합당한 음악을 우리 전통 음악에서 찾아본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제격일까. 모르긴 해도 밑도드리라는 음악을 거론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하 참 그 것이 있었구나'하고 공감을 할 것이다. 그만큼 '밑도드리'라는 음악은 '아름다움과 선함을 다한'고인가 하면 '낙이불음'하고 '애이불상'한 음악이자, 숱한 세월의 풍상에 마모된 간결한 곡선의 바윗돌처럼 육중하면서도 너그럽고, 심오하면서도 부드러운 군자풍의 음악이다. 대악필이라는 말은 이 같은 음악을 두고 한 말이다. 밑도드리는 또한 미환입, 혹은 수연장지곡이라고도 한다. 보허자라는 음악에서 파생된 곡으로서 연주 시간이 7분 정도 걸리는 아정한 음악이다. 쓸데없는 잔가락은 모두 덜어 버리고 요점만 간결하게 짚어 가기 때문에 번차음하지도 않고, 한배 또한 의젓하고도 정중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추호의 경망함이나 흐트러짐이 없다. 여러 가지 요소를 어우르는 균형도 있고 여러 가지 성격을 포용하는 중용지도가 풍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예로부터 정악을 익히려면 으레 이 곡을 필수적으로 거치는 것이 통례였다. 말하자면 정악으로 입문하기 위한 기본적인 연습곡이었다. 이 곡을 필수적인 연습곡으로 삼았던 것은 비단 연주상의 테크닉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연주 기법도 중요하지만 바로 이 밑도드리가 함축한 정악의 분위기, 다시 말해 정악에서 터득해야 할 음악 정신을 체득하기 위한 현명한 배려였음이 분명하다. 밑도드리에 얽힌 이런 일화가 있다.
윤준강 (국악평론가) |
출처 : 소리마을 [五音十二律]
글쓴이 : 載民 원글보기
메모 :
'정악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최예영님의 정악대금연주 <어메이징그레이스와 아리랑> : 동영상 (0) | 2016.10.18 |
|---|---|
| 양악보를 정간보로 옮기는 방법 (0) | 2015.02.16 |
| 樂而不流 哀而不悲 수연장지곡에 대한 이해 (0) | 2015.02.16 |
| 유초신지곡 상령산 전체 (0) | 2014.10.14 |
| [스크랩] 유초신 상령산 공부 3장2 (0) | 2014.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