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산행일지 : 경주 남산
일시 : 2005년 2월 26(토)
날씨 : 맑음, 바람
귀국, 나로서는 실로 1년 만에 내 나라의 산을 다시 오르게 되어 감격스럽다.
캐나다에 있으면서 물론 산에 전혀 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로 형용하기에는 어려운 낯설고 허전함 같은 것이 늘 있었다.
세계 최고라는 록키도 등고선 회원들과 함께 일주일을 구경했지만 장엄하고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했을 뿐, 사람과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으로 느껴졌음은 비단 나만의 감정은 아니리라.
그 동안 우리 등고선의 정기산행을 한번도 빼먹지 않고 이어온 회원들이 고맙기 그지없는데 또 나의 귀국환영 가족등반을 가까운 경주 남산으로 계획해 둔 회원들이 있기에 아직 집과 일터의 정리도 마치지 못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았다.
어저께 전화로 약속한 8시 50분, 정확하게 금도현은 벨을 눌렀다.
우리가족도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참이어서 곧바로 나서니 오늘은 스타렉스가 준비되어 있고 금도현 가족과 김이돌 회원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0시경 경주에 닿아 아이들은 경주제일교회에서 열리는 겨울 성경학교에 보냈다.
오늘은 도자기 체험을 하는 날이랜다.
금방 집이 조용해진다. 차를 한잔 마시며 미루었던 얘기들을 쏳아낸다.
점심을 일찍 먹느니 아니면 산행 후에 점심을 먹느니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점심을 일찍 먹기로 하자 김생곤 부인이 상을 차려 온다.
갈치조림, 부추전, 생두부, 된장 등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먹고 12시경 집을 나섰다.
‘남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남산등반은 이번이 등고선으로서는 두 번 째이다.
지난 1월 나의 환송등반을 이곳에서 가졌는데 오늘 이곳에서 귀국환영 등반 겸 제 30회 정기산행을 가지니 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지만 모두 김생곤 총무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도를 펴고 코스를 고심하다가 총무가 가족 산행을 염두에 두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포석정-전망대-정상-삼불사-포석정의 원점회귀형으로 정하였다.
오늘은 산행인원이 7명으로 등고선 역사상 가장 많은 날이다.
포석정 주차장 옆 마을 공터에 주차를 하는 덕에 주차비를 벌고(이것도 총무가 경주 사는 덕이다) 담 너머로 보이는 포석정을 지켜보며 12시 20분 산의 초입에 접어든다.
따뜻한 햇살 아래로 흙은 어느 새 냉이, 쑥 등의 봄나물을 키워내고 있다.
펼치고 앉아 봄나물을 뜯어도 멋진 하루가 될 것 같다.
좌측으로 못을 지나 등산로에 접어드니 일단의 산행팀들 중 한 아주머니가 나더러 어느 쪽이 가까운 길이냐고 묻는다.
다들 비슷하다고 하였더니 우리가 가는 길로 가자며 앞선 사람들을 부르나 모두들 대답없이 그저 걸음을 계속하기에 아주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쪽 일행을 따라 황급히 가셨다.
계곡을 따라 오르자니 산은 높지 않은데도 계곡물이 그리 적지 않다.
얼음들 아래로 흐르는 물들이 무척 정겨운 모습이다.
지난 번 총무님 가족이 산행을 하다가 눈 쌓인 계곡에 주저앉아 하루 종일 신나게 미끄럼만 타고 돌아왔다는 곳엔 그날의 흔적이 흩어진 계란 껍질로 남아 있었다.
왼편으로 비교적 급한 경사로를 조금만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능선에는 신라좌상이라는 부조의 돌을 만난다. 이것이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이다.
그리 크지 부처님의 않은 모습을 새겨 놓았는데 지난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듯 선들이 많이 무디어져 있다.
좌상 앞에는 인근의 돌들과 시멘트로 쌓아 만든 좌대가 있어 이곳에 앉아 금도현 회원이 준비한 포라로이드 필름으로 부부 기념촬영을 했다.
능선길을 조금 더 진행하면 능비봉 석탑을 만난다. 이 석탑은 5층 이상의 규모로 꽤 큰 것이지만 최근에 복원한 듯 많은 곳이 새로 만들어진 석재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주의 모습은 볼 만하다. 차갑고 강한 바람을 피하여 볕이 드는 곳에서 사과를 나누어 먹는다.
석탑 옆에는 다시 복원을 기다리는 몇 개의 탑신과 석재들이 줄지어 있고 탑의 복원을 위하여 분묘를 이장해 달라는 공고가 안내판에 부착되어 있다.
다시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금오정이라는 전망대를 만난다.
바람막이도 없이 콘크리트 기둥위에 육각 형태의 기와지붕만 얹어놓았다.
무엇하러 지었는지 잘 모르겠다.
전망을 보려면 오히려 없는 편이 나을 듯한데 등산객들이 비를 피하라는 것인지... 통일전을 바라보며 김생곤으로부터 서출지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이제부터 꽤 넓은 길을 만난다.
남산 부석을 왼쪽에 두고 지나면 곧 사자봉을 만난다.
등산로에서 조금 비켜있는 사자봉에 이르자 이내 눈살이 찌부러진다.
바로 사자봉 머리 위에 세워놓은 남산관광일주도로준공기념비 탓이다.
멋진 등산로를 놔두고 또다시 산을 깍아 넓은 관광도로로 만든 일이 무에 그리 자랑스럽다고 시공사, 발주처, 사업개요 등등을 빼곡히 담은 이 준공기념비가 필요한 것이며 굳이 사자봉 꼭대기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아야만 했을까?
오히려 그 이름들이 후일에 수치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자랑스럽지 못한 흔적의 무거운 돌을 평생 머리에 이고 있어야할 사자봉과 이를 언짢은 시각으로 지켜보는 우리는 물론 앞으로 또 이를 보고 마음아파 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 마음이 무겁다.
제발 이런 식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사자봉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조금만 오르면 남산의 정상에 오른다.
정상의 다소 너른 평지에는 지난해에 보지 못했던 국립공원 금오산 해발 468m 이라는 정상석이 새로 놓여져 있다.
돌과 금오산 글씨는 그럭저럭 볼만하나 기단에 설치년도와 설치단체를 새겨놓은 오석이 정상석과 조화롭지 못하고 굳이 그 이름을 새겨야 했는지는 다시 의문이 간다.
‘산에 오르되 오지 않은 듯 다녀가라’는 프랭카드도 보았는데 다들 인간은 그들의 살았던 흔적들이 그리 귀한가 보다.
정상석 옆의 이정표에서 단체사진을 찍고는 하산 길에 접어든다.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며 들러볼까도 했지만 지난번에도 보았고 해서 그냥 바둑바위 아래로 삼불사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잠시 쉬며 연양갱과 귤을 권하자 생각없다는 사람에게 금도현 회원의 부인께서 “일단 챙겨 놓아라”고 하자 한 바탕 웃음이 쏳아진다.
오늘의 어록으로 “일단 챙겨놓자”로 정하고 맛있게 간식을 들었다.
삼불사의 배리 삼존불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단체로 와서 삼존불에 대한 문화해설을 경청하고 있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에 오르자 도자기 체험에 갔던 아이들로부터 손전화가 온다.
마칠 때가 되었으니 데리러 오라는... 4시 교회에 닿아 5분여 기다리니 아이들이 왔다. 차가 왁짜하다.
총무네 아파트로 돌아와서 따뜻한 커피와 홍합을 먹고 보문에 들러 낙지전골로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이것도 총무가 계산. 완전히 풀서비스인 셈이다. 맵지만 아이들도 곧잘 먹었다.
어둠이 시작되는 길을 달려 우리 집에 다들 도착하니 8시경. 각자의 차에 나누어 타고 헤어지다.
남산에 관한 가장 상세한 안내는 경주남산연구소 http://www.kjnamsan.org/z/top.html를 참조하면 된다.
登.苦.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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