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산행일지: 충남 공주시 계룡산(845.1m)
일시 : 2004년 9월 20일 (월)
날씨 : 흐리고 비
산행코스 : 동학사 - 은선폭포 - 관음봉 - 삼불봉 - 남매탑 - 동학사
산행시간 : 5시간 (오전 10시30분 ~ 오후 3시30분)
관음봉에서 바라본 자연성릉 너머로 멀리 삼불봉이 보인다
8월에 캐나다 록키를 다녀온 이후로 여러 가지 밀린일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하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9월중순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9월정기산행을 가야하는데 18일(토)은 1,2청장년회의 등반이 계획되어있고, 김이돌회원도 사업상 바쁘다 하시고 이래저래 시간내기가 어려워 평일인 20일 월요일에 산행하기로 하고, 지난 2년전 9월 거창 황석산 등고선 창립 첫산행을 하면서 한껏 가을냄새를 느낀 감회를 생각하며 북쪽으로 좀 한적한곳을 찾아 갈요량으로 고민을 하다 대둔산이 어떨까 하며 금도현회원에게 전화를 하니 대둔산은 가보았는지 근처 계룡산이 어떻겠느냐하여 20일 아침 7시30분에 금도현회원 아파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비가온다고 한다. 아침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안개가 자욱하니 날씨가 흐린게 비가 오긴 올 모양이다. 서대구 나들목을 통과하여 성서로 빠지는길이 많이 정체되어 10분늦게 도착하니 이미 김이돌회원과 금도현회원이 산타페에 승차해 기다리고 있다. 김이돌회원은 지난 5월 문경 희양산을 다녀온 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하는 산행이다. 우리도 지난달은 록키를 다녀왔지만 산행다운 산행은 하지 못한터라 다소 마음이 설레인다. 대전을 지나 회덕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야하는데 또 무슨 얘기를 한참했던지, 길을몰라 그랬던지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다행이 얼마가지 않아 신탄진 나들목에서 회차하여 유성 나들목을 나오니 톨케이트 바로앞에 월드컵경기장이 우뚝하니 맞이하고 있다. 유성은 관광지로 온천이 있어 그런지 계룡산입구까지 가는길은 대로로 한적한 가을 분위기를 느끼려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도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게 어디에도 가을은 없다.
적당한곳에 주차를하고 매표소를 들어서니 이곳도 문화재관람료 포함하여 인당3,200원(동학사에는 국보도 없는데), 그래도 주차비는 내지 않은 것에 위안을 삼고 동학사 입구로 들어서니 그동안 많이 보아온 단풍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마을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산나무등 우리 나무들이 정겹게 반겨준다. 록키도 좋았지만, 우리에겐 역시 우리나라 우리산이 주는 느낌이 어느나라것 못지 않게 좋은 것같다. 동학사는 비구니승의 불법가원으로, 입구 계곡 개울 너머에는 부도탑이 한결같이 나즈막하게 소담스러워 보이며 부도탑 앞터에서 잡초제거를 하는지 여러 비구니승이 모여앉아 호미질하며 작업하는 모습이 정겹다.
평일 월요일이라 그런지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아 한적하게 한시간여쯤을 평이하게 오르고, 잠시 숨을 고르며 먹는 오이와 사과 한알의 맛은 산을 찾지 않고서는 느끼 수 없는 맛이리라. 잠시 쉬었다 다시 오르자마자 바로앞에 전망대가 나타난다. 한줄기 물줄기가 시원스레 떨어지는 은선폭포와 디딜방아의 쌀개(디딜방아를 양쪽에 고정시키는 V 모양의 걸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쌀개봉이 보이는데, 저러한 모습을 보고 쌀개를 연상하여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우리조상들의 재치가 더욱 놀랍다.
쌀개봉
은선폭포 바로위에는 명색이 국립공원이라 그런지 은선대피소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식수를 담고 오르는길은 가파른 너덜지대라 땀 꽤나 흐른다. 식수를 두병이나 담아서인지 배낭무게가 은근히 부담스러워 헉헉대며 오르는 모습이 힘들어 보이는지 금도현 회원이 물통을 나누어 담자고 한다. 한참을 급경사 너덜지대를 오르니 계룡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관음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천황봉은 등산로 폐쇄로 접근할 수 없고 우측 관음봉을 향하여 올라보니 아래로 동학사에서 올라온 계곡과 뒤로 멀리 천황봉 그리고 앞쪽으로는 계룡산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자연성릉이 호쾌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계룡산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국립공원 이름값을 하는 산세가 가히 절경이다. 계룡산은 주봉인 천황봉에서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으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벼슬을 한 용의 형상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과연 자연성릉을 포함하여 능선전체가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한 모양이다.
위에서 보니 동학사는 양옆 산줄기에 둘러싸인 협소한 자리에 겨우 절터가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그래서 그런지 동학사 사찰규모는 국립공원내에 위치하고 있는 여느 사찰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다. 관음봉 정상에서 기념촬영을하고 삼불봉을 향하는데 가는 빗줄기가 오락가락한다. 곧 비가 올 것같다. 재촉하여 자연선릉을 타고 진행하는길이 양옆으로 깍아지르는 아찔한 단애가 재미를 더한다. 중간중간 등산로가 없다는 표시가 나오나 난코스로 가는 재미를 알기에 무리하여 칼날능선으로 오르니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이 짜릿하다. 적당한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의 만찬을 먹을 차례. 그런데, 아뿔사 ! 다 있는데 연료가 없다. 이런실수를 하다니! 할 수 없이 도시락으로 가져온 밥한통과 김치 생라면 영양갱 과일로 점심을 때울 수 밖에. 회원님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는 다시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속은 편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등산로를 멀리하고 칼날능선으로 오를 요량으로 바위를 타고 올라서니 희미한 등산로가 보이는 듯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낭떨어지! 더 이상 앞으로 진행할 수 없다. 옆으로 탈출하기에도 여의치 않아 조심스레 내려오는데 물기묻은 바위에 갑자기 미끄러져 주위사람을 긴장하게 하였다. 이래서 등산로가 아닌곳으로 가면 안되는 것이다. 이제 제법 빗방울도 굵어져 산세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삼불봉을 넘어서자 갑사와 동학사로 가는 갈림길. 동학사 가는 길로 들어서 조금 내려가니 남매탑이 나온다. 예전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 "갑사로 가는길"이 떠오른다. 비오는 날 남매탑 앞에서 그 옛날 남매탑에 얽힌 사연을 보니 더더욱 애절한 느낌이다. 여기서 그 옛날로 한번 되돌아 가볼까나?
갑사로 가는길
지금은 토요일 오후, 동학사(東鶴寺)엔 함박눈이 소록소록 내리고 있다. 새로 단장(丹粧)한 콘크리트 사찰(寺刹)은 솜이불을 덮은 채 잠들었는데, 관광(觀光) 버스도 끊인 지 오래다. 등산복 차림으로 경내(境內)에 들어선 사람은 모두 우리 넷뿐, 허전함조차 느끼게 하는 것은 어인 일일까?
대충 절 주변을 살펴보고 갑사(甲寺)로 가는 길에 오른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오르막길은 산정(山頂)에 이르기까지 변화가 없어 팍팍한 허벅다리만 두들겼다. 그러나, 지난 가을에 성장(盛裝)을 벗은 뒤 여윈 몸매로 찬바람에 떨었을 나뭇가지들이, 보드라운 밍크 코트를 입은 듯이 탐스러운 자태(姿態)로 되살아나서 내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흙이나 돌이 모두 눈에 덮인 산길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우리들은, 마치 북국(北國)의 설산(雪山)이라도 찾아간 듯한 아취(雅趣)에 흠씬 젖는다. 원근(遠近)을 분간(分揀)할 수 없이 흐릿한 설경(雪景)을 뒤돌아보며, 정상(頂上)에 거의 이른 곳에 한일자(一字)로 세워 놓은 계명정사(鷄鳴精舍)가 있어 배낭을 풀고 숨을 돌린다. 뜰 좌편 가에서는 남매탑(男妹塔)이 눈을 맞으며 먼 옛날을 이야기해 준다.
때는 거금(距今) 천 사백여 년 전, 신라(新羅) 선덕 여왕(善德女王) 원년(元年)인데, 당승(唐僧) 상원 대사(上原大師)가 이 곳에 와서 움막을 치고 기거(起居)하며 수도(修道)할 때였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天地)를 요동(搖動)하는 어느 날 밤에, 큰 범 한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大師)는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念佛)에만 전심(專心)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신음(呻吟)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人骨)이 목에 걸려 있었으므로, 뽑아 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난 뒤 백설(白雪)이 분분(紛紛)하여 사방을 분간(分揀)할 수조차 없는데, 전날의 범이 한 처녀(處女)를 물어다 놓고 가버렸다. 대사는 정성(精誠)을 다하여, 기절(氣絶)한 처녀를 회생(回生)시키니, 바로 경상도(慶尙道) 상주읍(尙州邑)에 사는 김 화공(金化公)의 따님이었다.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겨울이라 적설(積雪)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자(處子)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前後事)를 갖추어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김 처녀는 대사의 불심(佛心)에 감화(感化)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淸淨)한 도덕(道德)과 온화(溫和)하고 준수(俊秀)한 풍모(風貌)에 연모(戀慕)의 정(情)까지 골수(骨髓)에 박혔는지라, 그대로 떠나 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夫婦)의 예(禮)를 갖추어 달라고 애원(哀願)하지 않는가? 김 화공 또한 호환(虎患)에서 딸을 구원(救援)해 준 상원 스님이 생명(生命)의 은인(恩人)이므로, 그 음덕(陰德)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와하며, 자꾸 만류(挽留)하는 것이었다.
여러 날과 밤을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義男妹)의 인연(因緣)을 맺어, 함께 계룡산(鷄龍山)으로 돌아와, 김 화공의 정재(淨財)로 청량사(淸凉寺)를 새로 짓고, 암자(庵子)를 따로 마련하여 평생토록 남매(男妹)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佛道)에 힘쓰다가, 함께 서방 정토(西方淨土)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입적(入寂)한 뒤에 사리탑(舍利塔)으로 세운 것이 이 남매탑(男妹塔)이요, 상주(尙州)에도 또한 이와 똑 같은 탑(塔)이 세워졌다고 한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탑에 얽힌 남매(男妹)의 지순(至純)한 사랑도 끝이 없어, 탑신(塔身)에 손을 얹으니 천 년 뒤에 오히려 뜨거운 열기(熱氣)가 스며드는구나!
얼음장같이 차야만 했던 대덕(大德)의 부동심(不動心)과, 백설(白雪)인 양 순결(純潔)한 처자의 발원력(發願力), 그리고 비록 금수(禽獸)라 할지라도 결초심(結草心)을 잃지 않은 산중 호걸(山中豪傑)의 기연(機緣)이 한데 조화(調和)를 이루어, 지나는 등산객(登山客)의 심금(心琴)을 붙잡으니, 나도 여기 몇일 동안이라도 머무르고 싶다.
하나,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지 오래여서, 다시 산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한결같이 내리고 있다.
이상보
그놈 참!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수도하는 스님에게 여자를 물어오다니.. 고얀놈이로다. 그 처녀도 참 못생겨도 에지간히 못생겼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젊은 처녀를 마다하고 수도할 수 있단 말인가?
어쨋든 한껏 분위기에 젖어보고 눈 대신 굵어지는 빗줄기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동학사에 내려오니 3시30분. 오늘은 비도오고 하여 일찍 돌아오기로 하고 지체없이 대구로 돌아오니 6시30분이다. 다음달 10월 산행은 한껏물든 단풍을 보기로 기대하며 우리의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감하다. (경주로 오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등고선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남산(경주시) (0) | 2012.05.31 |
|---|---|
| [스크랩] 신불산 영취산(울산시 울주군) (0) | 2012.05.31 |
| [스크랩] 록키산맥(캐나다) (5) | 2012.05.30 |
| [스크랩] 조계산(전남 순천시) (0) | 2012.05.30 |
| [스크랩] 우두산(경남 거창군) (0) | 2012.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