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고선 산행기

[스크랩] 지리망산(경남 사천시 사량도)

교매(喬梅) 2012. 5. 31. 17:39

  제32회 산행일지 : 경남 사천시 사량도 지리망산(동백호 기관장의 멋) 


일시 : 2005년 3월 19(토)

날씨 매우맑음

 

아무래도 봄을 맞으려면 남행이 좋겠다고 하자 김총무는 충무 미륵산, 고성 연화산, 고흥 팔영산, 부산 금정산 등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과 함께 한국의 산하 접속순위 92위라는 사천의 와룡산을 후보로 압축해 게시판을 통해서 알려왔다. 몇 번의 전화 끝에 경남 사천의 지리망산으로 가는 임시 전세 배편이 가능하다고 하여 비록 약 5년 전 총무가 혼자서 다녀온 적이 있긴  하지만 나와 금도현 회원을 위하여 다시 그곳을 제32회 등고선의 정기산행지로 정하였다.
아침 일곱 시 금도현의 성서 보람타운 203동 앞에 모여 어제 저녁 조문의 일로 대구에 와 잠을 잤다는 총무가 운전대를 잡고 출발.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차는 막힘없이 구마고속도로를 남으로 내려와 함안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서남방향을 지나 사천 IC에서 3번 국도를 갈아타고 다시 정남방향으로 내려와 9시경 사천항에 닿았다.
원래는 삼천포시 였으나 시군 통합 시 행정구역 명칭변경으로 지금은 사천시가 되었다. 사실은 삼천포란 이름이 훨씬 더 익숙하고 정겨운 것이 사실인데 잘 나가다가 빠지는 곳이란 이미지 탓에 사천으로 정해졌나 보다. 항구에 가득한 배들이 내려놓았을 것으로 보이는 신선한 노동의 댓가들이 이미 위판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도 꽤 활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이리저리 포굿가를 구경하다가 복국집에 들어 한 그릇으로 둘이 나누어 먹었다. 김총무는 모친 집에서 오는 탓에 아침을 먹고 왔고 금도현이나 나는 집에서 일찍 나오는 탓에 아침을 못 얻어먹은 탓이다. 역시 아내보단 어머니가 한수 위인가 보다.
지리망산은 사량도에 있으므로 그곳에 닿으려면 먼저 물길을 거쳐야 한다. 다행히 대구 KT지사 산악부가 마련한 전세배가 있어 우리 셋은 끼여 가기로 했다. 9시 40분 일신호 승선, 10시 출발. 곧 뽕짝이 나오자 우리는 밖으로 나와 뱃전에 나란히 앉아 봄볕, 잔잔한 봄 바다, 맑은 날씨를 마음껏 감상하고 바쁜 일로 참석하지 못한 김이돌 회원에게 전화도 걸었다. 배에 탄 모두의 얼굴빛이 참으로 밝다. 도착이 가까워지자 선내에서 선장의 사량도 강의가 시작된다. 위험에 대한 주의, 귀선 시간 등 안내가 끝나고 우리가 공짜로 배를 탔다는 일종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을 즈음 “뒤에 타신 세분 중 대표 한사람은 앞으로 오라”고 한다. 승선에서부터 단체 팀에 묻혀갈 요령으로 선장과의 눈길을 멀리하는 등 이래저래 애를 써보았지만 결국 총무가 가서 배 삯 12,000원을 지불하고 돌아온다. 순진하고 외교력 없는 김총무를 둘이서 씹어 보았지만 이미 요금은 지불된 후의 일이다. 약 45분 가량의 항해로 사량면 돈지리 선착장에 배가 닿는다.
사량도는 뱀(蛇)이 많아 그 혐오감을 덜어보려고 선량할 량(良)자를 붙여 썻다고 하며 윗섬과 아랫섬 그리고 및 몇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지며 지리망산이 있는 윗섬에만 약 2,000여명의 주민이 사는 작지 않은 섬이다. 우리가 타고 온 배에 거의 100여명의 산행 식구가 내리니 작은 항구마을이 형형색색의 사람으로 가득찬 느낌이다.


  큰 두 단체 등반객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재빨리 출발하여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를 지나고 봄배추가 싱싱한 넓지않은 밭들, 봄나물 가득 피워 올린 밭둑들을 지나 산의 초입에 접어든다. 지리산 까지는 2.6km, 10시 50분이다. 사량도의 등반코스는 길이 좁고 험하므로 주로 이곳 돈지리를 시작하여 지리산, 불모산, 옥녀봉을 거쳐 대항 혹은 금평항까지의 약 8km를  일방통행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의 몇몇 사람을 추월하여 20여분 오르니 갑자기 앞이 환해지며 아래로 바다가 보이는 능선에 당도한다. 물론 올라온 뒤쪽을 보아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남해바다이다. 땀이 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므로 대부분 등반객들은 여기서 쉬면서 사진기를 들이댄다. 앞으로 펼쳐질 경치들에 비하면 이곳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데...이제부터는 하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구간이 암릉지대이다. 이곳 바위들은 여러 장의 얇은 판들을 포개어 놓은 듯 참으로 신기하다. 지질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아는 것이 없지만 바위 깨어짐의 결이 뚜렷하고 입석대의 축소판으로 보이기도 하며 부분부분 떼어놓고 보면 하나의 잘 손질된 분재처럼 멋진 작품들이다.
11시 40분, 지리산 397.8m의 정상 표지석 앞에 이른다. 정식명칭은 지리망산이나 직접 육지의 지리산과도 견줄만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표지석에는 지리산으로 적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정상은 복잡하여 서둘러 사진을 찍고는 속이 차다며 배가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금도현 회원과 함께 다시 출발한다. 그 바쁘고 정신없는 틈에 날씨가 더할 수 없이 좋았음에도 정말 지리산이 보이는 지 나침판과 지도를 펼치고 살펴보지도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좁고 험한 칼날능선으로 이어지는 곳이어서 식사를 위해 피할 곳이 마땅챦다. 12시 20분 경 지리산 정상에서 약 400m 정도 진행한 곳에서 좌측의 비탈에 자리를 잡았다. 금도현은 많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라면을 두개 반만 넣고 끓이자 금도현은 코펠에 라면 국물을 담고 그것을 찬 배위에 갖다댄다. 나로서는 14개월 만에 먹어보는 산라면일 뿐더러 오징어가 든 시원한 김장김치 그리고 식은 밥도 있는 정식의 화려한 라면상인데도 그 맛이 반감한다. 아픈 사람을 옆에 두고 둘만 먹자니 그런가 보다.
한 시경 다시 배낭을 들고 조금을 지나니 내지, 옥동 방향의 안부사거리를 만난다. 금도현은 혼자 이곳으로 내려가 대항에서 만나자고 한다. 잠시 쉬면서 서로에게 먼저가라고 하다가 혹시 급체가 아닌가 하며 한번 따보기로 하고 내가 차가운 양손엄지손가락을 일회용 침으로 따주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갈 수 있겠다며 따라 일어선다.
등산로가 좁고 험하여 많은 우회로가 있었지만 날카로운 험로, 능선을 따라 30여분 진행하여 곧 이 섬의 실제적인 정상인 불모산 달바위(400m)에 이르자 금도현은 이 경치를 못 볼 뻔 하였다며 만족해 한다. 정말이지 경치가 좋다. 가마봉,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바위 꼭대기마다 가득 메운 원색의 등산객들, 하얀 부표들이 무더기씩 줄을 지어 경계를 알리는 끝없는 바다의 땅 양식장과 그 사이를 수놓은 섬들이 하나 되어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낸다. 아프던 배가 많이 낳았는지 금도현은 웃으며 V자를 그리곤 사진을 찍는다. 


이제부터는 하산 길에 속한다. 말이 하산이지 가마봉, 옥녀봉에 오르자면 다시 또 얼마간의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달바위에서 출발하는 내리막은 다소 경사가 급하다. 한참을 내려오면 이젠 로프를 잡고 가마봉으로 오르는 큰 바위를 만난다. 이 바위 앞에는 등산객들이 버린 나무지팡이가 거대한 무덤을 이룬다. 로프를 잡으려면 이제껏 집고 왔던 지팡이가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다소 위압적으로 보이나 실제로 로프를 잡고 올라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코스다. 금도현은 바위 상단에 붙어서 올라오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준다. 이제 가마봉(303m)이다. 이곳에서 지척에 보이는 옥녀봉에 닿자면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하여야 한다. 그것도 계단과 로프로 이루어진 거의 직벽에 가까운 바위들이다.
지리망산은 400m, 종주거리 8km 정도로 보기에는 만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르내림이 심하고 경사가 급하므로 체력소모가 상당하며 하산 길에서도 땀이 베어나는 그런 산이다. 오랜만에 등산하는 나로서도 체력이 많이 고갈된 상태다. 가마봉 바로 아래에는 종주코스에서 가장 아찔한 철계단이 놓여 있다. 15m 정도의 높이인데 아래로 내려보면 아득하다. 5년 전 안개 자욱한 이곳에서 다소 무서웠다는 총무 말이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우회도로가 튼튼하고 안전하게 놓여있지만 조심스레 도전해보는 것이 지리망산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 철계단을 내려와 조금 더 진행하면 금평, 옥녀봉 우회도로 200m가 표시된 이정표를 만난다.
지금부터 옥녀봉에 이르는 길은 체력소모가 심하거나 바위에 자신이 없으면 이곳에서 우회도로를 선택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 곳이다. 곧 다시 교통정체(?)가 발생하는 직벽 하강코스를 만난다. 이곳은 계단도 없이 로프에 의존하는 외의 달리 길이 없다. 로프가 두개나 설치되어 있지만 주말인지라 줄을 서서 다소간 기다려야 내 차례가 온다. 같은 로프에 서너 명씩 메어 달리니 다소 위험스러워 보인다. 우리 앞에 가던 중년의 한 아저씨는 다소 체력에 부친 듯 팔과 다리가 떨리며 위에서 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간간히 들리는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등산객들을 더욱 놀라게 만드는 곳이다. 무사히 내려서면 다시 오르막 정체를 만난다. 이곳도 직벽에 가까운데 이번에도 로프에 의지해야 한다. 여기를 올라서면 이제 오늘 종주코스의 마지막 봉인 옥녀봉(281m)이다. 옥녀봉에는 슬프기도 하지만 다소 끈적한 전설이 있다. 요약하면, 예쁜 딸을 혼자서 키운 홀아비가 딸에게 욕정을 품자 딸이 이곳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이야기다. 실제로 옥녀봉 구간에서는 옥녀 때문이 아니라도 여성들의 사고발생이 빈번하다고 하니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구간이다. 


옥녀봉에서 내려서면 곧바로 좌측의 대항 해수욕장 방향 이정표를 만난다. 내리막길은 15분 정도 다소 급하게 이어져 섬의 일주도로와 만난다. 다행히 약수터가 있어 물 한잔을 들이키고 나니 오후 3시 20분. 4시 20분에 배가 출발한다는데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산행을 마친 많은 무리들이 삼삼오오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멍게, 해삼으로 소주를 한잔 씩 걸치고 있다. 우리는 총무와 둘이서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부둣가로 가니 일신호는 없고 더 크고 화려한 동백호를 만난다. 기관장, 선장과 흥정을 통해 일신호의 편도요금 12,000원보다 싼 10,000원을 주고 승선하여 일신호 선장에게 사정이 생겨 다른 교통편을 이용한다고 전화를 했더니 “그러면 전화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소리치며 끊어버린다. 지금 전화하는 중인데... 일신호 박선장은 공돈 12,000원이 날라간 속상함을 그렇게 해소하는가 보다.
배는 4시 30분에 출발. 곧 오늘의 어록이 될만한 선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전략)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선내에서는 절대로 장난을 치지 마십시오”.
계속되는 멘트 “여러분께 음악을 틀어 드리겠습니다. 춤을 추실 분은 1층에서 기관장과, 그리고 조용히 여행하실 분은 2층에서, 모두 한 가족이다 생각하시고 즐겁게 지내십시오”
멘트가 끝나자 제복을 차려입고 화장까지 한 멋쟁이 기관장이자 DJ가 들려주는 뽕짝이 실내를 때리고 우리가 있던 일층 앞쪽에서는 중년 남녀가 주종인 춤판이 시작된다. 춤판을 구경할 요량으로 앞쪽으로 가 보던 중 DJ 기관장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더러 앞으로 나와 춤을 추라는 수신호를 받고는 도둑질하다 들킨 듯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암튼 일신호 보다는 훨씬 정감이 넘치고, 크고, 안전해 보이며(실제로 타기 전 선장은 보험 가입도 안된 아무런 배나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도 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를 맛보게 해준 동백호를 선택한 것이 잘한 일이라 여겨졌다.
삼천포항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부두보다 더 큰 부두(이곳이 원래의 배타는 부두로 보임)에 동백호는 우리를 내렸다. 차가 있는 곳까지 3,4분 걸어야 했으나 별문제는 아니었다. 손수레를 끄는 아주머니에게서 9마리에 만원하는 조기를 1마리 더 얹어 사고 다복식당에서 아구탕을 시켰다. 아구탕은 시원하고 깔끔하였으며 젓갈, 멸치 등 밑반찬도 맛이 좋았다. 배가 아프던 금도현도 깨끗하게 한 그릇을 비워냈다. 식당 앞에서 금도현, 김생곤 모두 조기를 산다고 흥정하고 있자니 식당 아주머니가 모자를 들고 뛰어 나오신다. 하마터면 모자를 잃어버릴 번 하였다. 배까지 든든하게 채우고, 이래저래 사람 사는 맛도 느끼고, 봄 바다, 바위산과 절경들까지 누렸으니 이보다 더한 하루의 호사가 있을까 생각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대구를 향했다. 

 

嶝.苦.善

출처 : 등고선(등산을 고대하는 선한 사람들)
글쓴이 : 교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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